예수께서 부활하신 이유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유] 2016. 8. 25. 목
로마서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 고린도후서 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 고린도전서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 마태복음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과 부활하신 이유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유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로마서 14장 9절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유가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으로 죽으시기 전이나 다시 살아나신 후에나 같은 하나님이신데 굳이 부활하심으로 주가 되려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몇 날 며칠을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에 대하여 묵상을 했습니다. 마침내 창세기에서 나름대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은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먹어도 결코 죽지 않으며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는 마귀의 말을 들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육신을 입은 아담에게 이 세상 통치권을 주셨으며 아담을 통해서 즉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 세상 통치권을 주셨습니다. 마귀는 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하며 오히려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는 속임수로 아담이 가진 세상 통치권을 빼앗아 이 세상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주인을 하나님으로부터 마귀로 바꾼 것이었습니다. 사탄이 가져간 이 세상에 대한 통치권을 마귀로부터 힘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가져 오려면 사람이 사탄을 이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후손인 사람으로는 영적 존재인 사탄을 이길 수 없음을 아시고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육신으로 오셔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모든 인류의 죄에 대한 삯을 대신 하나님께 지불하시므로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셨습니다. 죽으심으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해결하셨으며, 부활하시므로 율법과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은 마귀의 통치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이며 능력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주가 되시는 것만이 마귀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가 되시려 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조폭처럼 군림하고 지배하기 위해 주가 되시려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주가 되시려 하신 것입니다.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사탄의 궤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하셨다는 것을 마음에 믿고 그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도마처럼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라고 마음 중심으로 고백하며 예수님을 주로 영접할 때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귀신같이 예수님이 주인인 사람을 알아봅니다.
여기서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아는 것과 마음 중심으로 믿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천국 가는 것과 지옥 가는 것의 차이로 알아야 합니다. 또한 믿는 것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야고보2:19) 했습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고 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믿는다고 귀신들이 구원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절대로 결코 구원 받지 못합니다. 이어서 야고보 사도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합니다. 아브라함은 부인 사라의 경수가 끊어졌고 자신이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자식을 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백 세가 되었을 때에 아브라함은 마침내 독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백 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했을 때에 아브라함은 주저 없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릴 때의 상황을 히브리 기자는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11:19)”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자신이 믿는대로 행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백 세에 아들을 주실 능력이시면 죽은 자도 살리실 것이라 믿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행함이 따르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지도 않는데 행하려 해보십시오. 죽을 지경입니다. 행하지 않으려고 갖은 핑계를 다 댈 것입니다. 악덕 사장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 그가 시키는 것을 한다는 것은 고역 중에 고역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주님으로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 듣기가 싫고 무서울 것입니다. 오늘 또 무슨 말씀을 하셔서 날 괴롭게 하시려나. 그러나 주님의 품성과 능력과 사랑을 믿는 사람이라면 주님의 말씀 듣기를 즐겨할 것이며 주님의 말씀은 나를 세워주며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하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에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님과의 교제를 즐길 것입니다. 진실로 주님을 마음에 믿는 사람은 의무감이나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믿음을 행함으로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다음으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유는 우리의 믿음이 헛되지 아니하고 우리를 죄 가운데 있지 않게 하시려 함이었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죽고 영원히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죄가 이긴 것이며 사망이 이긴 것이며 마귀가 이긴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주인을 바꾸는 것이며 죄와 사망을 이긴 주님을 내 안에 계시게 하는 일이며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부활생명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죽고 제삼 일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하신 말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요 자신의 말대로 이룰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일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아버지와 동일한 신격을 가진 하나님이라 하며 죽었다가 부활하지 못했다면 그렇게 말한 사람은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이 말씀하신대로 제삼 일에 부활하셨습니다. 아니 예수님 자신이 예언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부활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야 예수님 자신이 주장하신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신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되니까요.
또한 예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성취하셔야 하셨습니다. “요나 1장 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16절 생략)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예수께서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아는 은혜를 받았지만 그 사실이 베드로를 변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베드로는 하나님이 아니고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 하며 심지어 자신이 고백한 신앙고백마저도 부인하는 잘못을 저질렀던 그가 변한 것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이후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베드로는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와 같은 몸의 소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와 똑같은 몸으로 소생하셨다면 예수님은 머리의 가시관 상처 온 몸의 채찍 자국, 손과 발의 못 자국, 갈비뼈를 관통한 창 자국 등을 오랜 기간 치료를 받으셔야 하는 병자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이 변했을리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치료 받아야 할 병자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는 다른 몸인 부활체로 부활하셨습니다. 살과 뼈가 있기는 하지만 순식간에 이동이 가능하고 음식을 먹기도 하지만 다시는 죽지 아니하며 쇠하지 아니하는 부활체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의 첫 열매로 우리도 부활하면 예수님과 같은 몸을 입을 것입니다. 부활은 미래의 소망이며 현재 우리 삶의 승리요 이김의 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