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과 진리로 하는 예배
[영과 진리로 하는 예배] 2021. 11. 25. 목
요한복음 4장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했는데 당신들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하니 예루살렘에서만 예배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신명기에는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예배해야 한다(12:11, 14:23)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졌을 때에 북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서 하나님께 예배했으나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대로 예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신 예배 장소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제는 산이나 예루살렘이라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른다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일한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고 아버지께 예배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는 자녀가 있을 때 받을 수 있는 호칭이며 자녀만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과 그를 믿는 자들의 관계가 종에서 자녀로 바뀐다는 이야기입니다. 히브리서 3장에서는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하여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지만 종이었으며 예수님은 아들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지만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는데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곧 다윗의 혈통에서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어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는데 곧 이 때라 하시며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며 하나님은 영이시기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예배는 성전과 제사장과 제물이 있어야 했고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차에 따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이 세 가지 모두가 폐기되었는데 이는 예수께서 성전과 대제사장과 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이런 절차와 내용이 모두 예수께 통합되었습니다. 영과 진리는 아버지께 예배하는 수단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성전과 제사장과 제물이라는 물리적 실체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할 수 있는 물리적 수단이 없어졌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시고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에 앉으시므로 구속사역의 모든 일을 끝내셨으며 이제는 재림하시는 것만 남았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여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는 새로운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또한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거듭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누구든지 자연인은 영적인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만이 우리를 하나님과 영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하실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예수께서는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3-14)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주셔서 각 사람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후 보내신 성령이십니다.
잘 아시는대로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하셨으므로 우리가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추측하거나 해석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더 길게 말할 것 없이 어떻게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공예배이건 개인 예배이건 예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장 단순하게 말해서 예배란 하나님을 경배하고 숭배하는 행위인데 영과 진리로 어떻게 경배하고 숭배하는냐는 것이죠. 성령께서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구속주로 아버지로 고백할 수 있게 인도하십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구속주로 아버지로 말하지 않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우리에게 알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알게 하신 것들을 고백하고 인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부활의 의와 진리 되심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살리시려고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화목제물로 보내신 사랑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면서 아버지를 높이는 것이 예배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배 형식을 조금씩 다르게 할지라도 내용은 영원히 반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7절부터 11절에 하나님께 경배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9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이여 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렸습니다. 이 광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눈 진정한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교회에서 하는 묵상기도, 찬송, 기도, 설교, 헌금, 광고 축도를 하는 순서를 다 마치면 예배했다고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예배와는 거리가 상당히 먼 것 같습니다.
이십사 장로들과 네 생물이 입을 열어 큰 소리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여 하며 밤낮 쉬지 않고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는 모습을 생각하면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믿는 자는 높고 높은 보좌에 인간과 떨어져 있는 엄청난 하나님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데 아버지께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므로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자기 식으로 치성 드리듯이 정성을 다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성전에서 제사장이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면 예수님이 오신 후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할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므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