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교리로 아는 사람은 마음에 부활이 가득하지 않습니다
[부활을 교리로 아는 사람은 마음에 부활이 가득하지 않습니다] 2018. 5. 24. 목
사도행전 4: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베드로가 예루살렘 성전 앞에 있던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친 것이 예루살렘에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알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모여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위협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자신들이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사람들의 말을 듣고 침묵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는 말씀을 듣는 것이 옳다라고 말하며 우리는 보고 들을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했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습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보았으며 예수께 들은 말씀들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본 것과 들은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들은 직접 예수님을 보고 그의 말씀을 들었지만 우리에게는 예수님과 만났던 사도들의 증언이 담겨 있는 성경이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전도자와 목사님들의 설교와 다른 사람들의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듣는 말씀들은 사도들이 전한 내용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께서 죽으셨다고 전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자신들의 인생을 걸고 따랐던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물 위를 걸으시며 귀신을 쫓아내며 멀리 있는 사람을 말씀으로만 고치시는 예수께서 그런 능력을 가지고 맥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충격 중의 충격이었습니다.
그 예수께서 다시 사흘만에 살아나셔서 그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보는 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습니다. 사도들의 마음에 가득했던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아니라 부활이었습니다. 그들은 입만 열면 부활을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들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게 됩니다. 아픈 상처가 있었던 사람은 아픈 상처에 대하여 어떤 이는 자식에 대하여 어떤 이는 돈에 대하여 어떤 이는 정치에 대하여 어떤 이는 운동에 대하여 자신의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합니다.
신앙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사에 대하여 예언에 대하여 방언에 대하여 병 고침에 대하여 능력 행함에 대하여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합니다. 교리적으로도 십자가에 대하여 마음이 가득한 사람은 십자가에 대하여 말합니다. 부활을 교리적으로 아는 사람은 부활에 대하여 마음에 가득하지 않기 때문에 사도들처럼 부활을 말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을 교리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인지하게 된 사람들은 부활을 중심으로 십자가를 말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태복음 12:34 35) 하셨습니다. 선한 사람이 그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사람이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듯이 십자가로 쌓인 사람은 십자가를 말하고 부활이 쌓인 사람은 부활을 각각 그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게 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는 수치의 상징이며 악한 죄인의 죽음을 상징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그보다는 물고기가 상징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뀐 것은 로마 황제인 콘스타티누스 황제가 기독교가 개종하고 나서부터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부활이 아니라 십자가가 중심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사가들은 서기 300년 이후부터 부활 중심에서 십자가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기독교는 퇴락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부활이 마음에 가득해야 부활을 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