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역사상 하나밖에 없는 표적이며 증거입니다] 2017. 5.25. 목
마태복음 12: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십자가의 죽음은 유일한 표적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처형 당했던 두 강도들도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밖에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가 아닌 물론 다른 여러 사유들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나사로처럼 나흘만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도 있지만 나사로는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 그 자체로는 특별하고 유일한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특별한 일이 될 수 있는 것은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위인들이 있었지만 그 사람의 출생과 삶의 특정 여정들이 기록되고 그대로 산 사람은 없었으며 특히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죽는다는 기록이 있었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뻔한 이야기로 생각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실 기막힌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시며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등 여러 기적을 행하시므로 자신의 말씀과 행하는 일을 보고 믿으라 사람들에게 말했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젊은 청년이 사람으로서 하나님이라 하니까 아무도 믿지 않은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다음과 같이 예수께서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간다는 기록이 없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유대 지도자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정략적으로 희생당한 훌륭한 선지자 정도로만 알았을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러나 부활은 역사상 단 한 번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표적이며 증거입니다. 사람들이 왜 부활 부활 하느냐 하는데 이는 부활을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홈런타자 하면 가장 먼저 베이브 루스를 말합니다. 루스는 1931년까지 통산 714개의 홈런을 쳤고 이 기록은 1974년 행크 아론이 기록을 깰 때까지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홈런 기록이었습니다. 미국의 최다 홈런 기록은 행크 아론이 가지고 있으며 1976년까지 755개입니다. 야구를 말할 때 세계 최고의 기록 보유자들의 행적을 말하는 것은 매주 자연스러운 일로 여기면서 세계 역사상 단 한 번밖에 없는 부활을 말하는데 왜 부활만 말하느냐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삼 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기적을 보고 경험했지만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임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에 그에 대하여 전혀 인용하거나 설명한 곳이 없습니다. 비록 예수께서 행하진 기적이라도 부활이라는 기적과 비교해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제자들은 깨달았기 때문에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다고 하며 안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도들과 같이 마음의 충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이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부활을 알더라도 삶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모습을 본 제자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살면서 부활을 중점적으로 전파했습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그가 다시 오실 때에는 천하의 심판자로 오실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며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골로새서 2장에서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한 번 밖에 없고 하나밖에 없는 표적과 증거인 부활을 증거하는 것은 마땅하고 마땅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