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과 주 되심의 전파] 2016. 8. 4. 목
사도행전 1장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 2장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 고린도후서 4장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예수님의 부활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뿐 아니라 우주와 이 세계에서는 더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하나 뿐이고 둘은 없는 사건입니다. 다른 종교 지도자들은 다 죽었으며, 그들의 신들은 실체가 없는 종교적인 신이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면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다가 유대인들의 시기를 받고 빌라도에게 사형판결을 받으신 후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역사적인 인물이시며 하나님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신 분이십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는 그저 예수라는 훌륭한 선지자가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며 하나님과 자기를 동등하게 여겼던 인물이 죽은 것에 대한 탄식과 아쉬움과 절망만이 넘쳤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끔찍한 사건이며 불합리한 사건이었지만 예루살렘 사람들에게는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죄인에 대한 사형집행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죄인들과 함께 죄인 취급을 받아 유대인의 왕이라는 정치범이라는 죄로,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내 아버지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며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주장한다는 신성 모독죄로 죽으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께서 죽으신 사건은 여러 불합리한 재판 속에서 사형판결을 받아 죽은 안타까운 사건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반전이 일어난 것은 사흘 후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였습니다. 열두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사람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보고도 ‘정말로 살아나셨나’ 하고 의심한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꾸밈없이 기록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 마가복음 16장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사흘 뒤에 일어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보통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신이 부활하신 모습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하며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나타내신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사도행전 10:40, 41). 예수께서는 자신이 말씀하신대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않으시며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않으셨습니다. 귀한 것의 가치를 모르는 자는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그것을 말하는 자를 도리어 상하게 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삼 년을 함께 지냈던 제자들에게 다른 제자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보았다고 전해도 믿지 않았는데 하물며 예수님을 믿지 않고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께서 부활하신 모습을 나타내셨다면 그들이 받아들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죽으신 것의 증인이 아니라 부활의 증인들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던 사람들과 그들의 증언을 들었던 사람들 즉 이차 삼차의 증인들도 다 죽었습니다. 예수께서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한복음 20:29)라고 말씀하신대로 이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한 채 그것을 기록한 성경과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을 통해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다는 것을 믿는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의 한결같은 증언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입니다. 모든 서신서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쓴 것들입니다. 서신서들은 부활을 전제하지 않고 읽으면 아주 이상한 이야기가 됩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드시면서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태복음 26장)“ 하신 말씀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후였습니다. 이를 사도 요한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한복음 2:22)“고 기록했습니다. 부활 후에야 예수님의 말씀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속에 감춰진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계시 받아 로마서와 고린도 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등 신약성경 27권 중 13개의 서신을 썼습니다. 바울이 깨달았던 십자가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이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입니다. 부활을 전제하지 않고 십자가를 읽으면 십자가가 죽음이 부활보다 더 강조되는 이상한 국면이 됩니다. 십자가의 피로 온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피를 흘리신 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흘리신 피가 사람의 피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피라는 것을 증명하신 것은 부활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부활 속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바울 사도는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청한 자리에서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사도행전 20장)“ 하며 교회는 하나님께서 핏값을 주고 산 소중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그리스도인)는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아주 귀중한 존재입니다. 교회를 소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것을 소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에 심문을 받는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사도행전 23:6, 24:21).
베드로와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주 되심과 그리스도 되심을 함께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 5장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전파한다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호칭 상으로만 예수님을 주로 부를 뿐 삶의 주인은 자신입니다. 주인을 바꾸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의 많은 행위들 즉 성경공부, 기도, 제자훈련, 각종 죄에 대한 회개는 그때 뿐이며 그 변화는 일시적입니다. 아니 주인을 바꾸지 않는 신앙생활은 그 사람을 변화 시키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모든 삶의 영역에서 주로 시인하지 않는 믿음의 생활은 헛된 믿음 생활입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시고 부활하셔서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이 개인의 주가 되지 못한다면 그 사람에게 무슨 변화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지 아니한다면 믿음으로 얻는 구원은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 10) 했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며 그의 부활을 마음에 믿는 것이 구원의 조건입니다. 두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어느 한 가지로 구원받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제시하신 구원 받는 조건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지 아니하면 구원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주 되심을 전파하며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