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방해하는 것들] 2016. 6. 30. 목
마태복음 21: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믿음에 대하여 여러 말씀을 하셨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은 생명줄입니다. 믿음, 믿음 하지만 정작 믿음대로 나타나는 일은 생각보다 풍성하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는 길 가의 한 무화과나무에게 잎사귀 밖에 없음을 아시고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니 무화과나무는 곧 말랐습니다. 제자들이 이에 대하여 여쭸을 때에 예수께서는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조건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의심에 대한 우리말의 사전 풀이는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확실히 알 수 없다는 핑계로 믿지 아니하는 마음이라는 말이죠. 야고보 사도는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1장)“ 했습니다. 의심하는 자는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이는 두 마음을 품은 자로서 모든 일에 함이 없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믿음의 가장 큰 적은 의심입니다.
예수께서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후 홀로 기도하러 산에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건너편으로 가라 하셨는데,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폭풍을 만나 가지 못하고 애쓰는 것을 보시고 바다 위로 걸어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신 줄 알고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예수께서는 오라 하셨고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예수께로 갔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면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했고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하셨습니다. 의심이 베드로를 물에 빠지게 했습니다. 베드로의 경우는 처음에는 믿었고 바람을 보고 무서워 의심하면서 물에 빠졌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거센 바람이라는 환경에 굴복해서 의심이 생기게 되었고 그 의심은 결국 그를 바다에 빠지게 했습니다. 예수께서 바로 눈 앞에 계신데도 베드로는 그 앞에서 빠졌습니다. 예수님이 곁에 계신 것이 우리의 믿음이 역사하도록 자동적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예수께서 곁에 계셔도 내가 의심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무효화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의심에 굴복하지 않는 믿음만이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예수께서는 불신과 의심의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으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딸이 죽어가고 있을 때 예수께 자기 집에 오셔서 고쳐주시기를 구했고 그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딸이 죽었으니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제 딸이 죽어 다 끝났는데 뭘 자꾸 말씀드리냐는 말입니다. 죽음 앞에서 한숨과 무기력이 득세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하신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며 야이로 회당장의 집에 가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울며 통곡하는 사람들에게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하시며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며 아이를 살리셨습니다. 낙심과 무기력과 불신의 분위기에 굴복하지 아니하시고 아이를 살리셨습니다. 믿음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불신의 벽과 믿음의 행보를 방해하는 폭풍 환경에 지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의심을 이기는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예수께서는 늘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분으로 기적을 행하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능력 많으신 예수께서도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마가복음 6:4~6). 권능을 행하실 수 없었던 이유를 마가는 그들이 믿지 않음이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역사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불신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존경하지 않았고 불신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누구든지 자기 고향에서는 존경 받기 어렵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어릴 때 어떻게 자란 것을 다 아는데 이제 와서 행세하는냐하는 것이지요. 불신은 아예 권능의 행사를 막아버리지만, 의심은 성공적인 시작을 실패로 만듭니다.
믿음을 방해하는 또 다른 요소는 염려입니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는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확히 믿음과 염려는 반비례합니다.
우리말 사전은 성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데 염려에 대하여 ”앞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걱정(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움)함“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를 다시 풀어 설명드리자면 염려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앞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마음이 쓰이고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우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염려는 믿음을 죽이는 가시덤불과 엉겅퀴입니다. 염려를 극복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믿는 자의 수많은 기도가 염려 때문에 도로 땅으로 떨어집니다. 치유를 위해 기도한 후 나은 줄로 믿는 것이 아니라 계속 염려합니다. 이런 기도는 새벽을 깨우고 밤을 새서 한다 해도 병은 낫지 않는 기도입니다.
믿음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두려움입니다. 믿음의 사람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 선지자 사백 명과의 갈멜 산 영적 전투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각을 뜬 송아지에 불을 세 번씩이나 부어 물이 가득한 제물에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게 하는 어마어마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이것을 듣고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했고 엘리야는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갔습니다(열왕기상 18장, 19장). 믿음의 사람 엘리야가 자기를 죽이겠다고 하는 말에 두려움이 생겨 이세벨에 맞서지 않고 도망갔습니다. 이 도망은 그의 선지자직을 엘리사에게 물려주는 계기가 되었고 엘리야의 엄청난 승리는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간질로 심히 고생하는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예수께서 고치시자 제자들은 예수께 조용히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물었고, 예수께서는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하셔습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를 킹제임스 번역은 ”너희 불신 때문이니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사실 볼펜 점찍은 크기 정도의 겨자씨보다 더 작은 믿음은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믿음이 있었으나 간질로 발작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서 또 주위 청중의 분위기에 휩쓸려 불신이 순간적으로 제자들에게 들어왔고 그 상황에서는 더 이상 아이를 고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의심과 두려움과 염려와 함께 공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내용을 요약해보면 믿음을 방해하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음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믿음을 방해하는 의심이나 염려나 두려움이나 불신이 자라도록 한다면 믿음은 역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합니다. 믿음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우리 마음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우리의 입과 눈과 귀의 오감을 절제하는 한편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침잠하고 기도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때 비로소 의심과 염려와 두려움과 불신을 이기는 믿음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