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행위] 2022. 4. 3. 주일
요한1서 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이 태어남은 말씀에 따르면 분명히 육체적인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영적 영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육신의 형제와 자매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처럼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다른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하나님께서 낳으신 다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의심해봐아 하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은 이미 어떤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낳고 호랑이가 호랑이를 나으면 그의 속성이 그대로 그의 자녀에게 전달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으셨다면 그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속성을 지닌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에게 있다고 보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아 거듭난 자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내재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성경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우리의 죄인 됨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존재가 되게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상태로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아는 만큼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가진 것을 모르면 가진 것을 누릴 수 없습니다.
기억나는 예화 중 잘못 기억하고 있는 줄 모르지만 그 내용은 ”어떤 사람이 오랜 항해를 하는 배를 타고 가는 데 배 삯에 음식 값이 포함된 줄 모르고 음식 먹을 돈이 없어 쫄쫄 굶다가 나중에 배 삯에 음식 값이 포함 된 줄 알고 음식 값 걱정 없이 잘 먹고 항해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배 삯에 음식 값이 포함된 줄 알았다면 항해하는 첫날부터 음식 값 걱정 없이 음식을 마음껏 먹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구원 속에 베풀어두신 내용이 무엇인 줄 알았다면 지금처럼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신학적 편견과 전통적 교리들이 성경대로 살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그 신학적 편견과 전통적 교리들을 벗겨내는 데에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훌륭한 존재로 만드신 후 선한 일을 해라 사랑해라 거룩한 행위를 가지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존재가 먼저고 행위가 나중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 중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태복음 7장)는 말씀이 있습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존재에 따른 행위의 열매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며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했지만 우리는 입만 열면 어렵다고 말하고 무지무지하게 무겁다고 말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질적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는 자이며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마다 세상을 이기는 자라 했습니다. 믿는 자라 하더라도 말씀대로 고백하고 인정하고 행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며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자인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그 존재에 담긴 것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시지 않은 것을 우리는 끄집어 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존재로 만드셨는지에 대한 깊은 묵상과 고백과 행함이 우리를 그렇게 지으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