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 출애굽기 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30:25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 레위기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 요한복음 17장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거룩이라는 말만큼 그리스도인에게 부담스러운 단어는 그리 흔치 않을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지만 우리말 사전에서는 거룩을 “뜻이 매우 높고 위대하다”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율법적 행위로서의 선한 행위나 성결하고 순결한 행위만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창세기에 처음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친지창조를 하신 후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어떤 날이나 물건이 거룩하다는 것은 도덕적 행위와는 관련이 없이 다른 날이나 물건과는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기를 나타내실 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라는 말씀입니다.
레위기에서는 거룩한 관유라 했는데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제조한 향기름이 거룩하다는 말은 일반 다른 기름과 특별히 구별된다는 말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거룩은 행위보다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모든 것을 거룩한 것이라 하며 따로 신성한 일에 쓰기 위하여 보통의 것과 구별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거룩을 행위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지 않고 선한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 말이지만 또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는 것(거룩함을 이루는 것) 또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우리의 거룩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의 의미를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를 따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안식일을 거룩한 날이라 하시고 모세가 선 곳을 거룩한 땅이라 하시며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조한 향기름을 거룩한 관유라 하신 말씀을 토대로 거룩의 의미를 이해해본다고 하면 거룩은 일종의 영역, 구분, 성별됨, 위치라 할 수 있습니다. 결혼식날은 신랑 신부와 그 가족들에게는 거룩한 날이며 시험이 끝난 날은 학생들에게 해방된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날이지만 우리는 구분해서 행동합니다. 그러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명령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실력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임재를 끌어낼 수 없습니다.
구약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전 장막과 예루살렘 성전은 거룩한 곳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신약에서 사도 바울은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린도전서 3장)” 하며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신 곳이 성전이며 너희 안에 성령이 계시는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며 성전을 더럽히지 말라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한일서 4:15) 했습니다. 서신서에 나오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 안에서라는 말씀들은 행위적 개념이기 보다는 위치나 영역적 개념입니다. 어떤 영역이나 위치에 있으려면 그 영역이나 위치에 있고자 하는 행동이 필요하지만 그 행동이 거룩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위치나 영역이 거룩을 보장해준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는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하셨습니다. 진리이신 아버지의 말씀이 어떻게 사람을 거룩하게 합니까. 진리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제가 요즘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반복해서 쓰는 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설명할 수 없다면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그 말씀은 이런 뜻이라고 글자가 의미하는 문자적 상징적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장 30절에서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하 했습니다. 예수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로움과 거룩함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의와 거룩함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15장) 하시며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 사람을 더럽게 하신다 하셨습니다. 죄는 사람을 더럽게 만듭니다. 입에서 나오는 비판하는 악한 말들은 사람들을 더럽게 만듭니다. 불평과 원망은 사람을 더럽게 만듭니다. 불평과 원망을 듣고도 기분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화내는 사람과 화를 받는 사람에게 모두 상처를 줍니다.
이와 반대로 잠언 16:24은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했고,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잠언 12:18) 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칼로 찌르는 것과 같은 말이 있는가 하면 양약과 같은 말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죄에 속한 말은 사람을 더럽게 하고 상처를 입히지만 진리의 말씀은 사람에게 양약과 같고 사람으로 선을 행하게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을 구별하게 하고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지 않게 하고 가야 할 곳에 가게 하기 때문에 진리가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자는 생각이 어디 있어야 하는지 마음이 어디 있어야 하는지 있어야 할 곳과 피해야 할 곳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행위적 개념으로 보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으로 거룩하게 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신다 하셨는데 이는 마친 죄 있는 자가 죄를 씻어 정결하게 한다는 말로 오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신다라는 말씀은 죄와 관련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본문에 인용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16절”)과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18절)”라는 말씀을 빼고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두 말씀의 속하였다는 말씀과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말씀은 영역에 대한 것과 예수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하시고 가라고 하신 곳을 가시고 가르쳐 주신 것을 말씀하시는 등 아버지믜 말씀에 자신이 헌신하고 순종한 것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조금 더 잘 이해됩니다.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나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할 때 거룩함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의 거룩은 하나님을 위한 성별과 순종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요약해보겠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에서 거룩의 의미는 도덕적 행위의 개념보다는 영역이나 위치 또는 구별됨의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죄는 우리를 더럽게 하지만 진리는 우리를 거룩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씀은 자신의 뜻대로 행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원하신 뜻대로 행하신 것으로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명히 선한 행동을 해야 하지만 선한 일 중의 선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의 임재를 충만하게 하는 일이 가장 거룩한 일이며 그것을 거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룩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성령의 충만한 임재이며 그리스도인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