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 그리스도인] 2019. 1. 17. 목
로마서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 고린도후서 4: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이신 것이나 죽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능동태를 사용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목숨을 내주신 것이 자발적이 아니면 일반 사회에서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항입니다. 불법적인 재판 과정이나 판결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순순히 십자가의 사형 판결을 예수께서 순순히 받아들이신 것은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죄값을 치르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믿는 자를 연합시키셨습니다. 사람은 이 연합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세례는 믿는 자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현대 교회는 세례에 대해 대속만 가르칠 뿐 세례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힘써 가르치지 않습니다. 골로새서 2:12에는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세례는 믿는 자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시킵니다.
어떤 목사님은 세례에 이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뭐도 알지 못하고 받은 세례를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몇 번이나 세례를 받으니까 이 목사 뭔가 이상하구만 이단 아냐 세례는 평생에 한 번만 받는 것인데 왜 이래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세례의 의미를 알고 세례를 받으며 나는 이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세례를 받았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 자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도 20대 초반에 성경이 말씀하는 세례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그 세례를 성경이 말씀하는 세례를 받았다고 확언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은 믿는 자는 세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 자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으로 딱 한 번 일어난 유일무이한 사건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이유는 부활의 새 생명으로 행하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이 없으면 부활 생명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죽음 없이 부활의 화려한 생명을 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새 생명은 죽음에 넘겨짐이 없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를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이를 성경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함이라 하며 거듭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 사건을 인지하는 것은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부활을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제자들에게 보이셔서 그들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제 부활을 믿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던 제자들의 말과 그들의 순교를 보고 우리도 믿습니다. 그러나 부활 생명을 사는 일은 한 번으로 끝나는 사건이나 일이 아닙니다. 매 순간 매일을 죽음에 넘겨지는 일이 생길 때에 부활 생명이 나타나게 됩니다. 부활을 믿게 되었는데 어떻게 부활 생명으로 살 것이냐는 어떻게 매일 예수의 죽음을 짊어질거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죽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께서 죽으실 때에 우리도 함께 장사되었음을 믿는 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질 때 하나님께서 부활 생명을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