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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으로 난 것은 육이며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김지권 2018. 7. 5. 09:43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2018. 7. 5.

 

요한복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born)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born)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born) 것은 영이니 /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시며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 하셨습니다. 아이가 엄마의 뱃속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처럼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우리가 새로 태어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육체적으로 한 번 태어나면 모태에 들어가 다시 날 수 없습니다. 잉태와 출산 과정은 단 한 번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도 단 한 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일이라 해서 여러 번 태어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우리 육체에 속한 것으로 그 근거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오감과 이성으로 말미암은 지식과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육신에서 난 것이 아름답고 고상해도 육신에서 난 것이라 하시며 육은 무익하다 하셨습니다. 육신은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좀 더 오래 살 수는 있어도 영원히 사는 육체는 없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아무리 포장을 잘해도 육에 속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영으로 난 것만이 영이며 살리는 것은 영이라 하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라는 말씀은 죄 짓고 살며 죄인 의식에 쩔어 사는 사람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며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 것이 되었다 하십니다.

 

이 말씀은 육신적 관점에서 보면 누구도 새로운 피조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그대로이며 우리의 생각이나 살아온 과정도 그대로인데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하십니다. 우리의 육신적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 있는 다른 말씀들에 비추어볼 때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316절의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는 말씀과 고린도전서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며 그리스도인 안에는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한일서 4:15) 하셨으므로 누구든지 이 말씀대로 행한 사람은 하나님은 신실하시므로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한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녀이며 하나님께서 낳은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손주는 없고 자녀만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들려져 있는 것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은 읽고 듣고 지키는 자에게는 영이요 생명이 됩니다. 지적인 동의만 하고 말씀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생명 없는 글자에 불과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으로 행하는 자에게 성령이 일하십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며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무익하다 하셨는데 어떻게 살리는 영으로 살 수 있습니까. 육체적인 느낌으로는 우리는 죽었다 깨도 새로운 피조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사는 일에 익숙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사는 일에 만족하는 육신적인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 사는 방법은 말씀대로 믿고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믿고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육에 속한 감각으로는 말씀의 영역에 있는 것을 글자의 차원에서 이성적으로는 알아도 그 이상은 아닙니다. 내 이성이 믿기를 거부해도 의지로 말씀을 믿기로 선택하여 말씀대로 고백하며 묵상하고 되뇌일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이 생명이 되고 빛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아우리 생각해봐도 육신을 가진 우리가 영으로 사는 방법은 말씀을 읽고 듣으며 말씀대로 행하는 것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