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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부활

김지권 2018. 2. 22. 10:27


[창조와 부활] 2018. 2. 22.

 

창세기 1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3)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물은 종류대로 만드셨으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원숭이나 침팬지는 종류대로 만들어진 동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지 않았으며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또한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으며 생육하고 번성하며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처음 지음을 받은 아담은 범죄하지 아니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 즉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받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먹어도 결코 죽지 않으며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사탄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탄의 말을 믿은 것입니다.

 

성경은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서 5:12) 하며 아당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이 땅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려주며, 또한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로마서 5:14) 하며 아담이 오실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다 했습니다. 아담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범죄하기 전의 아담은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범죄한 사람들은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범죄하기 전의 상태로 모든 것을 회복하시기 위한 것이었으며 예수께서는 부활로서 재림하심으로써 처음보다 더 낫게 만물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은 사람을 자신의 자녀로 삼으려 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는 것에서 나옵니다. 다른 어떤 철학이나 과학이나 예술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나올 수는 없습니다. 창세기를 빼면은 그 원형이나 기원을 알 수 없으며 회복해야 할 기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아담이 범죄할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시고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책임을 지시려고 아들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에 죽음과 부활을 겪게 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하며 첫 사람 아담과 둘째 사람 예수님을 대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예수님의 오심과 재림은 필연적인 역사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실 때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육의 아담 생명을 신령한 사람으로 회복하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께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이 되신 것과 전능한 능력을 지니셨음에도 불구하고 죄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불멸의 하나님께서 죽으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린도전서 1:23) 라 말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가 죽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으며 이방인들에게는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을 신으로서 예배하는 대상으로 삼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창조와 십자가의 도와 부활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마지막 영생은 부활 생명입니다.